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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8 청혼

싱싱하 2017. 8. 4. 04:30

0. 

다소 독특한 소설의 세계관을 가진 배명훈 작가의 '청혼'을 읽었습니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첫숨'이라는 책도 빌렸는데, ㅋㅋㅋㅋㅋㅋ 아직 이 책은 한번도 못폈네요

청혼 책의 경우 중편소설인데, 책 내부의 자간이 아주 넓고 ㅋㅋㅋㅋ 편집이 진짜 편지처럼 여백이 많아서 그런가 읽기 쉬웠습니다.

문영이가 책 제목 철분이라고 읽지만 안았어도 더 로맨틱했을텐데 (+공대 노감성 남자분들의 계산 태클이 아니엇으면 더더 로맨틱했을텐데...ㅠ) ㅋㅋㅋㅋ 아무튼 서평때 그 느낌을 좀 더 잘 전달하지 못한게 아쉬웠어요...



1.  책 줄거리 소개 [YES24 퍼옴]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는 곳, 
막막한 우주에서 지구로 띄우는 ‘청혼’의 편지


막막한 우주공간에서 정체불명의 적과 대치하고 있는 궤도연합군의 작전장교인 ‘나’. 우주에서 태어난 ‘나’는 날 때부터 중력을 느껴본 적 없이 우주공간에서 살아왔다. 그런 ‘나’의 여자친구는 지구출신으로 현재도 지구에 살고 있다. ‘나’는 중력을 감당하기 힘들지만, 그녀와 함께할 수 있다면 지구에서라도 살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주에서의 이 전쟁이 끝나야만 한다.


궤도연합군에 공격을 해오고 있는 적은 그 정체가 뚜렷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예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연합군 사령관인 데 나다 장군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의심하여 감찰군을 파견하고, 사사건건 감시하고 통제하는 감찰군 덕분에 누가 진짜 적인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상황으로 흘러간다. 


적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함대를 정비하는 동안 휴가를 받은 ‘나’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170시간을 날아 지구로 가지만 떨어져 있던 거리만큼 뭔가 서먹해진 관계 속에서 그녀에게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채 아쉬움을 느끼며 귀환한다. 


몇 차례 전투가 벌어지는데 적은 마치 시간을 건너오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나 공격하고 사라지곤 한다. ‘나’는 정정당당하지 못한 적의 존재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전쟁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고, 그 무렵 지구에서부터 그 먼 거리를 날아 그녀가 찾아온다…….



2. SF 배경에 옛스러운 사랑의 표현


원래 소제목을 'SF 시대의 아날로그적인 로맨틱함'이라고 썼다가 다시 한글 표현으로 바꿨는데, 저 표현도 마음에 드네요

우주라는 공간이 한없이 넓어서 너무나 협소한 공간이죠. 우주선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광활하지만 너무나 협소한 세계

이 책은 1인칭 주인공 남자 시점에서 지구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남자는 우주 시대가 개척된 이래, 우주에서 태어난 세대입니다. 지구태생이 아니죠. 본인은 이제 무중력 상태를 벗어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태생적인 차이로 인한 차이를 이해하고 싶어해요 다양한 얘기를 편지에 풀어놓습니다.


주인공은 궤도연합군에 속해있는 '작전장교'인데 정체 모를 적과 싸우는 전쟁에 참전하게 됩니다. 여자친구는 지구에 있구요. 

서로에게 별로 보일만큼 멀리 있는 두 사람 속에 놓인 '우주전쟁'과 '로맨스'의 간극은 얼마나 될까요

서평중에 결말을 얘기하긴 했지만, 남자는 전쟁 중에 '시간을 왜곡하는 존재'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소설은 그 전까지 전쟁에 대한 자신의 소회, 견해, 연인에 대한 사랑, 우주 속을 유영하는 외로움을 담은 한 통의 편지에요. 


지금은 오히려 전화 한통으로 당장 옆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해, 고마워, 너 싫어 당장 내 마음의 감정을 전할 수 있는데

우주 시대에는 한 마디의 사랑해, 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주인공은 17분 정도를 기다려요

나도, 라는 대답을 듣기 위해선 35분을 기다려야 하구요 빛의 속도로 달려도 그정도라나 뭐라나...

오히려 예전에 전화기가 없어서 누군가와의 약속장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미래 시대인데 오히려 더 옛날 느낌, 옛날 감성과 통하는 부분이 있어보였거든요


주인공은 결국 여자친구에게 줄 반지를 만들었지만, 반지와 편지만 여자친구에게 들려보내게 됩니다.

한평생을 우주에서 살았고, 우주 태생이었던 남자는 '고향'이라는게 없었어요. 우주에선 계속 '이동'하니까요. 하지만 여자친구가 지구에 있음으로서 자기는 '고향'같은 기분을 느끼며, 너에게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시간을 왜곡하는 블랙홀로 들어가요. 그 고향은 여자친구가 있는 장소인 지구인것 뿐만 아니라 여자친구가 있는 '시간'도 되는 거죠. 미래시대에 응답은 공간을 넘어서 시간까지 고려해야만 하는 거에요


약간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비슷한 감정선이었어요. 공간을 넘어서 시간의 개념으로 확장되는 로맨스...!




3. 눈길을 끄는 문장들


원래 책의 문장을 다 베껴쓰는 타입은 아닌뎈ㅋㅋㅋㅋ 좋아던 문구들이 예스24 소개에도 올라와 있어서 퍼왔어요 ;)


여기에 적힌 문장들도 그렇지만 특히 내가 '실제로 우주에 있다면 저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우주의 무한한 공간, 시간, 팽창성, 외로움 등이 잘 드러난 것 같아요 소설 전체에.. 전쟁 모습에도 소리가 없는 모습도 신기하구요 (대기가 없어서)



“보고 싶었어.” 하고 내가 너에게 말했을 때, 네가 나에게 “나도.” 하고 대답해주기까지의 시간이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던 그 순간을, 나는 행복이라고 기억해. 네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단 한 순간도 망설임 없이 대답해줘도 너에게 닿는 데 17분 44초가 걸리고, 또 거기에 대한 너의 대답이 돌아오는 데 17분 44초가 더 걸리는 지금의 이 거리를 두고 내가 가장 숨 막히는 게 뭔지 아니? 그건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갑갑함이야.


적 함대와 첫 교전을 해보기도 전에 이곳 사람들은 이미 주정뱅이의 모순을 알고 있었던 거야. 35분 28초가 지난 뒤에도 그리운 그 사람의 마음이 그때 그곳에 한결같이 머물러주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이 옮겨갔다는 것을 아는 데는 또다시 17분 44초가 걸린다는 사실. 그게 우리를 한없이 불안하게 만들었어. 데 나다 장군의 용맹한 휴가 작전 계획도 어쩌면 그래서 나온 건지도 몰라.

마음을 정확하게 조준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어. 주정뱅이 모순이 일어나지 않는 거리까지 재빨리 다가가는 것.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그렇게 했어. 그리고 너에게 말했어. 사랑한다고. 그 말을 들은 네 표정을 읽는 데 또 35분 28초가 더 걸렸다면 나는 그만 말라비틀어지지 않았을까. --- p.59



-> 저는 이부분이 제일 좋았는데, 역시 다들 좋았는지 책소개에 꼭 나오는 문구네요 ㅋㅋㅋㅋㅋㅋ 

옆에 누군가가 사랑해, 라고 말했을때 나도, 라고 1초만에 대답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것

그런 상황이 생각보다 큰 축복일 수 있다는 점? 저는 35분동안 답을 기다려야 하는 갑갑함에 놓여있지 않다는게 새삼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ㅋㅋㅋㅋ 앞으로 좀 더 성실하게 연락을 주고받도록 해야겠어요. 배부른 고민이었던듯





그때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기만 했지만,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결국 이런 거였어. 그냥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날아온 거리만큼, 그 지긋지긋한 우주공간만큼 사랑하는 거라고. 그래서 너를 묶어두고 싶다고. 하지만 그 말은 할 수 없었어. 정말로 너를 묶어두는 게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런 애매한 입장이었어. 그래서 말할 수가 없었어. 그건 버글러의 모순을 해결한다고 해서 전달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영혼에 관한 문제였으니까. --- p.62


-> 와 저는 우주에 있는 사람이랑 장거리 연애를 할수 있을까요? 가는데 170시간 오는데 180시간이 걸리는 그런 연애? ㅋㅋㅋㅋㅋㅋㅋ 저라면 상상도 못할듯... 새삼 모든 장거리 연애 성공자들을 존경하면서 ㅋㅋㅋㅋㅋ 내가 날아온 거리만큼, 그 지긋지긋한 공간만큼 사랑한다는 거라는 표현도 인상깊었어요




우주공간에 떠 있는 일이 늘 조난당한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주위의 빈 공간에 비해 우리가 차지하는 공간이 너무나 작기 때문이야. 지구만 한 공간에 우주선 딱 한 대니까. 조난. 그래, 그건 조난이야. 무언가에 깊숙이 잠겨버리고 만다는 뜻이야. 어둡고 고요하며 거대하고 또 막막한 무언가.


그게 뭔지는 콕 집어서 말하기가 어려워. 그건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니까.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 자체.

6,400킬로미터야. 무려 지구 반지름 정도 되는 거리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지표면에서 사람은 해안에서 겨우 1킬로미터 떨어진 바다 위에 혼자 버려져도 조난을 당하고 쓸쓸하게 표류하다 혼자 죽는다고 들었어. 우리는 바닷물조차 없는 6,400킬로미터의 우주 한구석에 깊숙이 잠겨 있어. 그 너머에 있는 단 한 개의 점과 그 뒤에 다시 펼쳐진 수천 킬로미터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공백. 그건 벽이야. 아무것도 가로놓여 있지 않지만, 아무것도 닿지 않아. --- p.94



-> 이거는 우주에 떠 있는 외로움? 을 좀 잘 표현한 문장인 것 같아서 갖고 왔어요

전반적으로 소설에서 등장하는 이런 표현들 덕분에, 좀 더 몰입하면서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내가 실제로 우주에 떠있다면 어떨까, 그런 세계에 존재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등등..?




반드시 돌아올거야. 이상하지? 나 같은 우주태생이 어딘가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고향이 생겼어. 네가 있는 그곳에. 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남자주인공은 다시 그녀에게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4. 모처럼 재밌게 읽었던 소설


이 재밌었다는게 진짜 자극적으로 재밌다기보다는 새로운 관점에서 상상해 볼 수 있었던 소설이어서 좋았습니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 할 것 같네요!!

다들 출근 잘하세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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